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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야기

[바둑이야기] [8] 중국의 천재 오청원

by shje02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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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본으로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이 바둑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자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는 14세의 조남철 소년이 1937 도일하여 프로기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보다 앞서 1928년에 14세의 오청원(吳淸源; 우칭위안)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푸젠성 태생인 오청원은 바둑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 일본의 세고에 9 문하로 들어갑니다. 오청원은 시험바둑을 거쳐 프로 3단을 인정받습니다.

 

이후 오청원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자 일본 바둑계는 전통의 고수 슈사이 명인과의 대결, 정상급 고수들과의 십번기 팬들의 관심을 시합을 실행합니다. 말하자면 오청원은 바둑계 최대의 흥행카드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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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발상

 

오청원 9단은 창의적인 발상이 강점이었습니다. 다른 기사들이 생각하지 못한 수를 개발하여 신 정석을 만들기도 하고, 실전에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는 수를 자주 두었습니다.

 

당대 최고수 슈사이 명인과 시합을 할 때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독창적인 삼태성 포석

[1] 흑을 쥔 오청원 7(당시)은 흑13-3에 두고, 3을 화점에 둔 뒤 흑5를 천원(중앙의 화점)에 두었습니다. 당시는 흑1과 같은 3-3은 거의 두지 않았으니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데, 1에서 흑35로 마치 삼태성을 편 듯한 이 포석은 더욱 이색적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일본인들이 오청원의 집에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괴상한 포석을 펼친 것은 명인에 대한 예의에 어긋난 태도라는 것이었죠. 바둑이란 대국자의 마음대로 빈 곳이면 어디든지 둘 수 있으니, 이런 비판은 타당치 않죠. 하지만 이 일화는 오청원의 포석이 그만큼 창의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기성으로 불리다

 

이후 오청원은 다른 고수들과의 십번기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 당대 최고수로 인정을 받고,  기성(棋聖)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됩니다. 일본에서 기성으로 불린 사람은 도사쿠, 슈사쿠와 함께 오청원까지 총 3명입니다.

 

오청원의 바둑은 일본 기사들과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출현했을 저는 알파고가 오청원의 기술을 많이 모방하는 같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오청원의 바둑에는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뭔가 다른 요소가 담겨 있다고 있습니다. 일본기사들은 오청원이 요술을 부리는 같다고 했습니다.

 

오청원 9단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중국바둑의 발전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죠. 한국의 조남철 9단을 비롯한 김인, 조훈현 9 등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활동한 조치훈 9단이 바둑계 정상을 정복하자 한국인들이 크게 환호했듯이, 기성 오청원의 활약은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과 자긍심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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