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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야기][6] 일본기원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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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을 건너다
우리나라에서 ‘개척자’로 불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한국이 오늘날 경제•문화강국이라는 위상을 얻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개척을 한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딱히 개척자로 통하는 사람은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둑 분야에는 별명이 ‘개척자’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남철 9단입니다. 그는 전근대적인 바둑 분야의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여 바둑계를 새롭게 일궜습니다. 그로 인해 고대에 중국, 근세에 일본이 패권을 잡았던 한중일 바둑삼국지의 물줄기가 바뀌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조남철이라는 인물이 출현했다는 것은 한국 바둑계로서는 큰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37년 14세 소년 조남철은 현해탄을 건넜습니다. 일본의 선진 바둑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죠. 당시 바둑유학을 하러 외국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발상이었습니다.
조남철은 기타니 도장에서 수련을 한 뒤 프로 초단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일본에 귀화하라는 제안을 뿌리치고 그는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국내에 돌아와 국수급 고수들을 모두 꺾은 그는 ‘한성기원’을 세웠습니다. 이 기원은 조그만 바둑 영업장 규모였으나, 바둑계의 행정기관과 같은 원대한 목적을 표방했습니다.
이후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바둑을 보급하고 새로운 제도를 시행합니다.
조남철의 개척사업 중 가장 획기적인 일은 프로기사 제도의 도입일 것입니다. ‘프로’라는 말이 생소하던 시절에 전문 바둑선수인 ‘프로기사’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주변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겠죠. 그러나 조남철은 “한국이 일본보다 못 사는 것은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프로제도를 밀어붙였습니다.
바둑계를 개척하다
이 제도로부터 바둑 전문가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죠. 하지만 프로기사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바둑활동이 점차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둑에 소질 있는 영재들도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문사, 방송사들이 후원하는 프로기전들이 생겨났습니다. 국수전, 왕위전, 명인전, 기왕전, KBS바둑왕전 등 다양한 타이틀전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종로 관철동에 꿈에 그리던 한국기원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개척자 조남철이 일본의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에 바둑계의 체계를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한국풍을 지향했습니다. 일본바둑을 배우지만 언젠가는 일본을 넘어서자는 꿈을 꿨습니다.
그는 일본 바둑용어를 고칠 수 있는 것들은 날일자, 눈목자, 미생마 같은 한국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바둑책을 집필하며 ‘행마(行馬)’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기술을 특성화하였습니다.
기도보국의 꿈
특이하게도 조남철은 ‘기도보국(棋道報國)’ 즉 ‘바둑으로 나라에 보은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최강 일본을 꺾고 정상을 정복하여 한국을 빛내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죠.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요원한 꿈이었습니다.
이런 목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바둑은 기술적으로 일본에 종속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의 바둑책을 번역한 해적판이 서점가를 장식했고 김인, 하찬석, 조훈현, 조치훈 등 젊은이들이 선진 바둑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들 일본 유학파들은 조남철 9단의 뒤를 이어 한국바둑 최고봉에 올랐습니다. 토종 국산파들은 힘을 쓰지 못했고 바둑계 정상은 유학파들이 바턴을 이어받았습니다. 일본에 가지 않으면 대성하기 어렵다는 관념이 퍼진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 기사들은 일본에서 개발된 새로운 정석을 모방하기에 바빴습니다. 자연히 포석의 유행도 일본을 따라가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수준이었으니 한국바둑은 일본 바둑인들의 안중에 없었겠지요. 일본에는 서너 개의 바둑잡지가 있었지만, 한국바둑에 관해서는 한 줄 써 주는 데 인색했습니다. 역사적인 요인과 함께 자국에서 배워간 한국바둑이니 경시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의 바둑을 모양이 나쁘고 무식하다고 평했습니다. 한국 기사들은 그런 평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알 수 없는 법. 무시 받던 한국바둑이 최강 일본을 꺾고 세계 최강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바둑계의 한 원로는 "한국바둑에 천년대운이 왔다."라고 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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