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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야기

[바둑이야기] [13] 바둑 3단계

by shje02 202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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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에는 포석, 정석, 사활 등 다양한 기술이 있습니다. 약 10개 기술 분야가 있는데, 정확히 몇 가지 분야가 있는지를 단언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기술들이 몇 가지 다른 루트로 발전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바둑의 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바둑 3단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둑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모형입니다.
 
3단계 모형은 한 판의 바둑을 초반, 중반, 종반의 세 단계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각 단계의 주요 활동은 포석, 중반전, 끝내기라고 하죠. 포석은 터를 닦는 것이고, 중반전은 본격적인 싸움을 벌이는 것이며, 끝내기는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봅니다.
 
인생의 3단계와 비슷
 
이것은 마치 인생살이를 초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삼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초년기에는 준비를 하고, 중년기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노년기에는 생을 마무리하죠. 그러고 보면 사람은 삶을 준비하는 포석 단계가 너무 긴 것 같습니다. 25년에서 30년 정도니까요. 바둑에서는 포석 단계가 대체로 짧은 편입니다.
 
어쨌든 3단계 모형은 매우 단순하고 명쾌한 구분입니다. 고수들도 이 모형으로 바둑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혜성처럼 등장한 소년고수 이창호가 “끝내기는 좀 알 것 같아요.”라고 겸손하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포석과 중반전은 좀 부족하지만 종반의 마무리는 자신 있다는 뜻이죠. 나중에는 포석과 중반전도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한 판의 바둑을 3단계로 나누는 모형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고대중국에서도 포치(포석), 합전(전투) 등의 기술 개념이 있었는데, 3단계 모형은 17세기 이후 바둑기술이 크게 발전한 일본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3단계 모형의 장점
 
3단계 모형은 단순한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포석, 중반전, 끝내기 세 부문만 숙달하면 바둑을 잘 둘 수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제가 처녀작으로 쓴 바둑서 세 권도 이 틀에 맞춘 포석법, 중반전법, 종반전법이었습니다.
 
하지만 3단계 모형은 허점도 있습니다. 어떤 바둑은 초반부터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3단계를 밟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바둑팬들에게 친숙한 정석, 행마, 사활, 맥 등의 기술과 어떤 관계인지 확실치 않다는 점도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을 기준으로 분류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분류를 할 때는 동일한 ‘준거’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3단계는 바둑의 목표인 영토를 만드는 과정을 기준으로 했다고 볼 수 있죠. 포석은 영토의 기초를 만들고, 끝내기는 영토의 경계선을 마무리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중간 단계인 중반전은 ‘본격적인 전투’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전투’라는 색다른 개념이 튀어나왔습니다.
 
여기에는 바둑을 ‘집짓기’로 보느냐, ‘대마싸움’으로 보느냐 하는 패러다임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기술이 믹스가 되다 보니, 3단계 중 포석과 끝내기는 집짓기 기술처럼 여겨지고, 중반전은 전투 기술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3단계 모형’은 바둑기술을 설명할 때 여전히 유익합니다. 바둑기술을 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3단계의 기술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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